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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9일 경남 밀양시 부북면 일대 밀양 나노융합 국가산업단지 모습. 삼양식품 1·2 공장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기업이 입주하지 않아 대다수 부지에 잡초가 무성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한낮 최고기온이 29도까지 오른 5월29일.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에 있는 밀양나노융합 국가산업단지(이하 국가산단)는 햇볕이 내리쬐는 날씨와는 달리 썰렁한 분위기다. 기자가 지역민의 안내를 받고 밀양나노 국가산단 입구라는 지점에 내리자마자 보인 건 공터다. 전체 부지가 시야에 단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어림잡아 서울 여의도공원의 두 배 이상은 돼 고려저축은행채용 보였다. 수십 개의 업체가 들어설 수 있어 보인다. 그런데 입주한 곳은 삼양식품 1·2 공장이 전부다. 나노산업을 역점에 둔 국가산단의 이름이 무색한 듯하다. 건물을 세우기 전 부지를 다지는 공사가 덜 됐는지 공사 소리만 귓가에 맴돌았다.
허허벌판을 방불케 하는 부지 옆으로 멀리 농지가 보였다. 국가산단과 농지 사이의 범위를 쉽사리 구분하 자기신용조회 기 어려웠다. 기업들이 입주해야 할 국가산단도 공터처럼 보인 게 이유다. 활기를 띠어야 할 국가산단이 농지와 다르지 않아 보인 것이다. 실제로 부지를 둘러보니 관리되지 않은 잡초가 무성했다. 두어 개의 빈 건물은 모두 공실 상태다. 시사저널과 현장취재를 동행한 전문가도 당황한 기색이었다. 김정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도시개혁센터 정책위원장(방재관리연 햇살론 취급은행 구센터 연구실장)은 "언론 보도를 통해 3월 준공이라고 알고 왔는데, 실제 현장의 상황은 이와 다르다"고 했다.
그나마 삼양식품 공장 근처로 가야 '사람 냄새'가 났다. 공장이 가동되는 듯 라면 향이 진동했다. 내부에선 라면 제조가 한창이었다. 공장 앞에서는 라면을 이송하는 차량, 40~50대로 보이는 직원 두어명이 보였다. 여기서 자동차 원금균등분활 로 6분 이동하니 국가산단 내 연구동이 보였다. 이곳에는 기업이나 연구소 대신 공공기관 두 곳만 있다. '경남테크노파크'와 '청년행복누림센터 건립사업'이라는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인적은 드물었다. 기자가 이틀?머무르는 동안 밀양나노 국가산단의 취지에 걸맞는 현장 분위기는 느낄 수 없었다.
농지취득 자격증명 신청 지난 5월29일 경남 밀양시 부북면 일대 밀양 나노융합 국가산업단지에서 김정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도시개혁센터 정책위원장과 기자가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김 위원장조차 "나노 관련 기업들이 이곳에 이전해야 하는데, 구미에 있던 전자 업체들도 빠져나가는 상황 아닌가"라며 "현실과 동떨어진 명목으로 막대한 세금을 투입할 게 아니라, 규모를 작게 하고 지역 현실에 맞는 국가산단을 만드는 게 현실적"이라고 강조했다.
"'나노산업'에 걸맞는 기업 유치해달라"
이런 분위기는 지역 성장의 밑바탕인 교육 현장에서도 엿보였다. 밀양나노 국가산단 인근에는 나노분야 특수목적 고등학교인 한국나노마이스터고가 있다. 국내 유일한 나노 국가산단을 뒷받침하는 인력을 길러내기 위해 처음 개교한 곳이다. 그 성적표는 어떠할까. 밀양나노 국가산단에 취직한 학생은 지난 2021년부터 2024년까지 4명뿐이다. 2022년에는 아예 '0명'이었다. 전체 학생수가 현재 기준 250명(한 학년당 60~80명)을 조금 넘긴 점을 감안하더라도 '나노 학교'의 실효성에 의구심이 드는 지점이다. 기자가 만난 김상엽군(17)의 이야기에서 현실을 엿볼 수 있다. "밀양 국가산단이요? 안 갈 건데요. 반 애들 다 삼성가고 싶어 하는데요. 다른 친구들도 모두 저랑 같은 생각이에요."
한국나노마이스터고등학교에 다니는 김상엽군(17)이 지난 5월 학교 커리큘럼이 적힌 게시판을 가리키고 있다. ⓒ 시사저널 정윤경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업은 주요 대기업이다. 수도권에 위치한 삼성전자나 SK 하이닉스가 대표적이다. 매년 10명 중 8명꼴로 수도권 기업에 취직한다고 한다. 밀양에서 고급 인력을 키워 수도권으로 보내는 셈이다. 한 40대 근로자의 설명도 김군이 바라보는 시각과 다르지 않다. "국가산단이 조성되면 울산이나 창원에 사는 젊은이들이 많이 취직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상시 채용 공고를 내도 지원자 수는 늘 바닥이에요. 삼양(식품) 하나 달랑 있는데 젊은 친구들이 밀양으로 오겠습니까."
상권도 활기를 잃은 모습이다. 국가산단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강아무개씨(40) 역시 "오후 4시만 넘어가면 주변이 캄캄하다"며 "오전 8시쯤 대학생들이 셔틀버스 탈 때 빼고는 젊은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공인중개사 박아무개씨(68)는 "국가산단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듣고 8년 전 부산에서 밀양으로 공인중개소를 옮겼다"며 "그런데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기는커녕 수년째 상권이 죽어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박씨는 "조성 초기에는 호가가 많이 오르고 거래량도 늘어날 줄 알았는데 수년째 가시적인 변화가 없다"고 했다.
지역에서는 국가산단의 취지에 맞는 기업이 유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기업이 돌아가야 그 기업에서 일할 근로자도 늘어난다는 논리다. 학생들이 희망하는 주요 기업 혹은 나노 관련 기업이 국가산단에 들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나노마이스터고 관계자는 "우리 학생들은 반도체 분야와 관련해 내로라하는 능력치를 가졌다고 자부한다"며 "나노 국가산단이면 나노와 직결된 기업을 유치해 달라. 얼마든지 인재를 공급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분양률이 높은 국가산단도 사정이 나아 보이지는 않았다. 경상남도 창원시에 있는 창원 국가산단은 분양률 100%인 것으로 집계됐다.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국가산단 중 하나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입주 업체 3216개 중 2807개가 가동 중이다. 고용 인원은 13만명에 달한다. 단순 수치로만 보면 인근 상권도 활기를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실제로 기자가 지난 6월4일 창원 국가산단을 가보니 여러 업체가 단번에 보였다. 두 개의 공장만 가동되고 있는 밀양나노 국가산단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지난 6월4일 오후 경남 창원시 성산구 성산동에 위치한 창원 국가산업단지 전경. ⓒ시사저널 임준선
지난 6월4일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에 위치한 지식산업센터 내부 안내 게시판 모습. 195개의 회사의 입주가 마무리됐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24개의 회사명만 안내실에 붙어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다만 통계 수치가 온전히 현장에서 체감되지는 않았다. 자동차로 이동해야 할 정도로 넓은 국가산단에는 지식산업센터가 있다. 이곳 회사 배치표가 적힌 안내실을 확인해보니 195개의 회사의 입주가 마무리됐어야 한다. 그런데 24개의 회사명만 안내실에 붙어 있다. 현장 근무자를 찾아 공실이 많은 배경 설명을 듣고 싶었다.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도 근무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식산업센터 내 카페 역시 손님 하나 없이 조용했다. 수도권의 지식산업센터 입점 카페는 유동 인구 덕분에 손님이 많은 편이지만 이곳은 다르다.
"국가산단 일거리 넘친다고? 현실은 달라"
경제 이론상 지역 경기가 순환하려면 가계 지출도 뒷받침돼야 한다. 그런데 국가산단 내에 일거리도 없다 보니 저축만 하게 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지식산업센터 내에 근무 중이라고 밝힌 이아무개씨(28)는 "일감이 없어 야근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며 "국가산단에 오면 일거리가 넘친다고 들었는데 '사기 취업을 당한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한다"고 말했다. "경기가 안 좋으니 지갑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부동산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도 회의적이다. 창원에서는 '국가산단 근로자 맞춤형'으로 나온 한 아파트가 시공 중이다. 그러나 회사 통근버스로 출퇴근하고 있다는 이아무개(39)씨는 "국가산단 근처에 아파트가 완공되더라도 이주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동료들은 거의 없다"며 "회사에서 주거비를 부담해 주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주거비를 아끼려고 젊은 직원들은 '홈 쉐어(주거비를 분담하며 같이 거주하는 형태)'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의 설명을 듣고 이동하는 동안 국가산단 부지를 매매한다는 현수막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지난 6월4일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에 위치한 국가산업단지 인근의 토지 매매 현수막. 집 주인이 직거래를 한다는 취지의 홍보성 내용이 담겨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창원을 함께 찾은 구수미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주거분과정책위원(감정평가사)은 "다른 지역보다 창원의 경우 공실률도 낮은 편인데 이런 곳도 일감이 부족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건, 다른 국가산단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기자가 만난 국가산단 내 한 직원은 "창원에 있는 중견기업 이상 업체들이 이탈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창원 국가산단이 예전만 못하더라도 그나마 가동되는 건 외지인들이 그 지역에 일자리가 없다 보니 공장이 있는 이곳으로 몰리기 때문"이라는 경북 구미 출신 근로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전히 흙먼지를 날리며 공사 중인 곳도 있다. 경기 동두천시 상패동에 위치한 국가산단의 이야기다. 2021년 9월 첫 삽을 뜬 후 지금까지 아무런 기업도 입주하지 않았다. 공장 설립 전 부지를 정리하는 공사조차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자가 현장을 찾은 6월9일에도 부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동두천 국가산단은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소할 구원투수로 꼽혔다. 일자리가 창출되면 젊은 사람들이 유입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실제로 동두천의 경우 인구 감소세가 가팔라 10만 명 넘던 인구가 8만 명까지 줄었다. 그러나 기업이 입주조차 못한 상황이라 주민들의 실망도 역력했다. 시가 지난 2023년부터 분양 공고를 한 결과 64필지 중 2필지(2개 기업)만 분양 계약이 완료된 상태다(「[단독] 35조원 들인 '국가산업단지', 지방에선 "수출액 0원" '애물단지'」 기사 참조).
국가산단 현장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사는 홍희순씨(가명·71)는 "젊은 사람들이 다 떠났고 여러 업체가 들어오면 달라질까 기대감은 있지만 체감하는 건 없다"고 했다.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신숙희(가명·54)씨 역시 "국가산단에 대한 기대감으로 서울 가게를 접고 왔지만 유동 인구도 없고 조성 작업도 늦어지면서 큰 차이를 못 느끼고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지난 6월9일 경기도 동두천 국가산업단지에서 부지 조성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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