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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슬루 트레킹을 마치고 난 뒤 금의환향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또 새로운 출발을 의미했다. 랄리구라스 군락을 지나 안나푸르나의 시작에 들어서자 회색빛 사막과 거친 바람이 우리를 맞이했다.
다라파니에서 약 4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캉사르는 끊임없이 바람이 부는 바람 길에 위치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바람을 이용해 집집마다 오색의 룽다를 꽂고 삭막한 마을을 알록달록 물들이고 있었다. 바람 소리의 끝에는 이들이 흘려보낸 불경이 희미하게 묻어났다.
이곳에서 묵은 '메소칸토-라 호텔' 로지는 이번 한 달 트레킹 중 만난 곳 중 요샛 현대위아 채용 말로 가장 '힙한'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아침 식사로 먹은 쵸우멘이 네팔에서 먹은 음식들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맛있었다. 처음으로 로지가 마음에 들어서 다시 오고 싶을 정도였다.
길을 걷다 구름에 잠긴 히말라야 산봉우리에 시선을 뺏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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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안나푸르나 토롱라 패스 트레킹은 풍요의 여신을 상징하는 '안나푸르나'라는 명성과는 달리 캉사르의 첫인상처럼 티베트고원과 사막을 떠오르게 하는 곳이었다. 특히 첫 목적지인 틸리쵸 BC 길목은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자갈 경사면 곳곳에 자연이 만든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멈추지 말라'는 표지판이 무주택자기준 있는 이유
멋진 풍경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건 '멈추지 말라'는 표지판이었다. 그 뒤에 펼쳐진 지질공원을 방불케 하는 풍경은 그 표지판의 존재이유를 잘 설명해 줬다. 자칫 잘못하면 풍경에 시선을 빼앗겨 행렬 도중에 급정거를 하게 되고, 땅만 바라보며 걷던 이와 충돌 사고가 벌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틈틈이 시선 성남여수지구 을 빼앗겼다. 모든 시선의 양끝에는 각각 새하얗게 펼쳐져 있는 안나푸르나와 틸리쵸 히말이 있었다. 그 신령스런 모습이 뭔가 내딛고 있는 걸음이 단순히 높은 고개를 넘고자 하는 것은 아님을 느끼게 해주었다.
야차굼바.
좋은파산출발 그때 김 대장이 "마치 샹그릴라로 향하는 것 같다"고 혼잣말하듯 내뱉었다. 샹그릴라! 히말라야 속 이상향을 뜻하는 이 말은 처음 들었을 땐 그저 잠시 스쳐지나가는 단어였지만 이번 트레킹에선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약 한 달이 넘는 네팔 일정에서 두 대장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일상적인 이야기들도 많았지만, 각 봉우리의 초등기부터 원정대들이 악천후에 시간을 보내는 방법 등 산악실록을 써야 하나 싶을 정도로 야사와 정사를 넘나드는 한국산악연대기가 펼쳐졌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안나푸르나 야크카르카를 가는 길에 설명해 주신 박영석 대장 수색 작업 때의 이야기였다. 뿌리까지 드러나 있는 안나푸르나를 보며 김재수 대장의 손끝이 닿는 곳을 따라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실제 그 자리에 있는 듯 생생했다.
샹그릴라로 향하는 길 같았던 안나푸르나 서킷 트레킹 전경을 파노라마로 담았다.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하나 넘고 나니 드디어 초록빛 옷을 입은 산자락을 만날 수 있었다. 계곡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상반된 자연환경을 가진 하나의 산군이 참 신비로웠다. 그리고 그 초록빛에 걸맞게 도착한 야크카르카는 이전 로지들과는 다르게 수많은 사람들로 생기가 넘쳤다.
히말라야 동충하초, 야차굼바
캉사르에서 미리 들었었는데 우리가 트레킹 하던 시기에 안나푸르나 3,000~4,000m대에는 현지 말로는 '야차굼바', 우리에게는 동충하초란 이름으로 익숙한 식물을 채취하는 시기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이동대 대장은 그 뒤로 이따금 길은 찾지 않고 애꿎은 야차굼바만 찾아 헤매다 가이드 옹추에게 '야차굼바'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안개가 개인 아침 텐트에서 바라본 갈라파니.
활기 넘치던 야크카르카를 뒤로 하고 토롱패디를 향하던 길에 처음으로 한 70대 한국인 트레커를 만났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즐겨 찾는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 중 하나인데, 우리가 걷는 토롱라 패스는 같은 안나푸르나 구역에 있지만 트레킹 도중 지역에 있는 가장 높은 고개를 통과해야 하는 난코스라 한국인들을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다.
홀로 가이드와 함께 왔다는 그는 "한국에서는 종종 산에 많이 다녔으나 히말라야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가 히말라야는 처음인데 널리 알려진 코스가 아닌 이곳을 찾았다는 사실에 놀라서 어떻게 이곳을 오게 됐는지 물어봤더니 "ChatGPT에게 트레킹 코스를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이 코스를 알려 주었다"고 했다.
틸리초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길에 산사태 주의 안내판이 서있다.
이동대 대장은 많은 걱정과 우려를 표했지만 나는 내게 산을 알려주신 산 할아버지가 생각나기도 하고 2025년에는 충분히 가능한 모험이라 생각하며 그저 응원을 보냈다. 그리고 한국인 하나 없는 이곳에서 훌륭한 두 산악인을 만난 것도 그분의 행운이었을 것이다. 두 명의 대장에게 여러 산행 꿀팁을 들은 그는 한국에서부터 챙겨 온 마스크 팩을 선물로 줬다. 트레킹이 끝난 후 아주 요긴하게 잘 썼다.
그를 만난 덕에 생각난 산 할아버지는 나에게 산을 걷고 느끼는 법을 알려 주신 분이다. 아직 한국산도 다 둘러보지 못했다며 히말라야에 갈 기회가 있어도 극구 사절했지만 워낙 산서를 많이 읽은 탓에 ChatGPT보다 더 자세히 히말라야 봉우리 곳곳의 루트나 길들을 마치 직접 다녀와 본 듯 가르쳐 줬었다. 네팔에 오기 전에도 함께 저녁을 먹었었는데 '세상 참 좋아졌다. 부럽다'는 말과 건강히 다녀오라는 격려를 보내줬다. 마음 한편에는 내가 가는 것보다 할아버지가 다녀오고 당신이 보고 느낀 것을 이야기로 듣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야크카르카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로지를 먼저 선예약해야 하는 이유
몸이 풀려서 그런 것인지 난코스라는 악명에 잔뜩 겁먹었던 것에 비해 곳곳의 풍경들을 만끽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토롱라 턱밑에 도착해 있었다. 다락방 같았던 토롱패디에서 따뜻한 햇살과 함께 조금 긴 점심휴식을 갖는 동안 포터인 '템바Temba'는 먼저 하이캠프로 올라가 숙소를 예약해 주었다.
처음에는 같이 가면 될 것인데 왜 먼저 예약하고 돌아온 건지 그 의미를 몰랐다. 맘 같아서는 네 발로 기어오르고 싶었던 가파른 길을 오르고 나니 4,800m 고산에 난시장이 펼쳐 있었다. 올라오는 길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전 세계 트레커들이 여기에 다 모인 듯 로지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다.
토롱라 패스 안내판에 전 세계 각지의 트레커들이 남긴 기념품들이 가득 붙어 있다.
잠시 시장통에서 벗어나 고소적응 차 하이캠프에 있는 100m 정도 고도차의 뷰포인트에 올랐다. 전망대답게 안나푸르나산군을 파노라마로 볼 수 있었다. 그것보다 흥미로운 이곳만의 조망이 따로 있다. 전망대에 서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자갈로 만들어놓은 메시지들이다. 전망대에 올라오기 전까지는 뭔가 싶었는데, 올라가서 보니 무인도에서 자갈로 SOS 마크를 남기듯 곳곳에 하트와 이름들을 남겨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나도 엄마의 생신과 어버이날, 결혼기념일이 모두 있던 5월에 네팔을 떠나온 반성의 의미로 조촐하게 메시지를 남기고 왔다.
험준한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사막처럼 바짝 마른 길을 걷는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안나푸르나에서의 마지막 날 마나슬루 때와 마찬가지로 새벽에 모든 팀을 보낸 뒤 날이 밝은 후에 토롱라를 향했다. 늦게 출발한 덕분에 하이캠프에서 안 보여서 걱정되었던 70대 한국인도 볼 수 있었다. 하이캠프에 도착한 시간이 채 7시가 되지 않았는데 토롱패디에서 자고 거의 3시간 전에 출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니 우리 '템바'에게 더욱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하이캠프에서 토롱라까지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잿빛 허허벌판 위에 알록달록한 드레스가 보였다. 이어 수많은 룽다를 걸친 토롱라 패스 표지판이다. 트레킹 코스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다. 북적이던 하이캠프에서 하룻밤 동고동락했다고 얼굴이 익숙해진 외국 트레커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나니, 그제야 저 아래로 펼쳐진 내리막길이 보였다. 두 번의 5,000m대 '라'를 오르고 나니 오기 전까지는 고소만 걱정했었는데 앞으로는 내리막길을 걱정하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틸리초 베이스캠프에서 맞이한 아침.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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