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스'의 조폭 2인자 순태(조우진)는 중식당 주방장을 겸직하며, 중식 셰프의 꿈을 키운다. 사진 하이브미디어코프


영화 '보스'(3일 개봉)는 오랜 만에 명절 연휴 관객들과 만나는 조폭 코미디다. 식구파의 미래가 걸린 차기 보스 자리를 두고, 조직원들이 암투를 벌이는 내용이다. 여느 조폭 영화라면, 서로 보스가 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맞붙는 흐름으로 전개되겠지만, '보스'는 설정부터 확실히 차별화했다.
차기 보스 후보자들인 중간 보스들이 각자 자신의 꿈을 쫓겠다면서 넘버1 자리를 마다한다. 순태(조우진)는 중식 요리사의 재능을 꽃 피우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강표(정경호)는 교도소에서 접한 춤 탱고의 일인자가 되겠다 바로크레디트 는 일념 하에 보스 자리를 서로에게 양보하느라 치열한 기 싸움을 벌인다.
'단순 무식'한 판호(박지환)만이 보스가 되겠다고 나서지만, 누구도 그를 적임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극의 중심을 잡고 이끌고 가는 캐릭터는 순태다. 중식당 주방장을 겸직하며, 조직원들의 입맛을 책임지는 그는 보스 자리를 양보하고 중식 셰프로 거듭 여자대출 나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 조직 내에서 워낙 신망이 두터운 탓이다.



영화 '보스'에서 중식 셰프가 되고 싶은 조폭 2인자 순태 역을 맡은 배우 조우진. 사진 하이브미디어코프


지난 달 현대캐피탈 중도상환 26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조우진은 "영화 '보안관'(2017) 같은 경쾌하고 신나는 소동극"이라며 "환기가 필요해 영화 '보스'를 택했다"고 말했다.
Q : 어떤 환기가 필요했단 말인가. "뒤틀린 감정을 표현해야 했던 영화 '하얼빈'을 찍을 때 체력도 떨어지고 마음도 가난해져 있었다. 그 때 '보스'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코믹 신용카드 발급조회 액션을 통해 (관객에게)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도전 의식이 생겼다. '하얼빈'의 마지막 촬영인 고문 신까지의 고단한 여정을, 차기작인 '보스'를 떠올리며 견뎌낼 수 있었다. 지금은 쓴맛이지만 저기 단맛이 기다리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말이다. 작품의 행복감을 통해 나 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힐링을 선사하고 싶었다."
Q 아파트 복비 : 넷플릭스 영화 '사마귀'(지난달 26일 공개)에선 살인청부업계에 복귀한 레전드 킬러 독고 역을 맡았다. "순태, 독고 둘 다 꿈을 잃지 않으려 하는 중년 남자다. 1인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마귀' 촬영 때는 '나, 아직 죽지 않았다'라고 연기 노트에 쓰고 연기에 임했다. 스스로 1인자라고 믿고 있지만, 시대 흐름에 자신의 꿈을 내려놓아야 하는 처량한 인물이다. 반면, 순태는 시대가 자신을 1인자로 만들지만, 정작 자신은 하고 싶지 않은 아이러니한 상황에 맞닥뜨린다. 둘 다 처량하긴 마찬가지다."



영화 '보스'의 조폭 2인자 순태(조우진)는 중식당 주방장을 겸직하며, 중식 셰프의 꿈을 키운다. 사진 하이브미디어코프





영화 '보스'의 조폭 2인자 순태(조우진, 왼쪽에서 두번째)는 중식당 주방장을 겸직하며, 중식 셰프의 꿈을 키운다. 사진 하이브미디어코프


Q : 캐릭터 뿐 아니라 액션 또한 결이 완전히 다르다. "'사마귀'가 묵직하고 타격감 넘치는 액션이라면, '보스'는 청룽(성룡) 영화 같은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액션이다. '사마귀'가 쌓여있는 독(毒)에 독을 더 얹는 느낌이었다면, '보스'에선 독과 스트레스를 함께 풀어내면서 연기에 임했다. 외견 상 독고가 더 다부지고 건강해 보일지 모르지만, 심리적으론 순태가 더 건강했다."
Q : 중식 요리 장면은 어떻게 준비했나. "중식 대가 여경래 셰프와 그의 제자 박은영 셰프로부터 요리를 배웠다. 그 분들이 요리를 대하는 표정을 보며 많은 걸 느꼈다. 무표정하게 요리에 집중하는 모습에서 감동이 밀려 오더라. 능력을 인정받고 공감을 이끌어 내기까지의 과정이 고독하다는 점에서 연기와 요리는 비슷한 것 같다."
Q : 본격적인 코미디 연기는 처음 아닌가. "웃기려고 연기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진지하게 임해야 '찐' 웃음을 유발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예전에 '룸넘버 13'이란 연극을 할 때였다. 웃기려고 할 때 안 웃던 관객들이 내가 울 때서야 포복절도 하더라. 코미디 연기가 정말 어렵구나 라고 느낀 순간이었다. 난처하고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설득력과 공감을 자아내야 관객의 마음을 얻을 수도, 웃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Q : '내부자들'의 명대사 "여 썰고, 여 썰고"를 패러디하는 장면도 나온다. "어딜 가든 사람들이 내게 가장 많이 시키는 대사다. 지인 결혼식 사회를 볼 때, 케이크 커팅 타임에 그 대사를 하면 하객들이 엄청 좋아하신다(웃음). 아기자기한 영화에 안 어울리는 무서운 대사임에도 불구하고 아내 역할의 황우슬혜 배우가 잘 중화시켜줬다. 순태가 드라마의 기둥을 잘 지탱하고 있어야 그 아래에서 캐릭터들이 마음껏 놀 수 있다고 생각해 후배 배우들을 뒷받침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Q :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캐릭터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한 바탕 싸움을 벌이는 클라이맥스 신이다. 서로의 눈빛만 봐도 힘이 생겨날 때가 있는데 그 신이 그랬다. 각자 에너지를 뿜어내며 신나게 찍었다. 엄청 더웠는데도 얼굴 찡그리는 사람 한 명 없이 서로 아이디어를 내면서 며칠 간 찍었는데, 그 때의 열기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레트로 감성의 밉지 않은 '아재'들의 몸부림을 귀엽게 봐주시면 좋겠다(웃음)."



영화 '보스'의 조폭 2인자 순태(조우진)는 아내 지영(황우슬혜) 앞에선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한다. 사진 하이브미디어코프





영화 '보스'의 조폭 2인자 순태(조우진)는 아내 지영(황우슬혜) 앞에선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한다. 사진 하이브미디어코프


Q : 순태와 조우진의 공통점이 있다면. "순태는 싸울 때, 요리할 때 외엔 허당기가 있는 인물이다. 조직 내 2인자지만, 딸 앞에선 언제든 무너질 준비가 돼 있다. 그게 나와 닮았다. 순태는 아내 앞에서 잘못을 바로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는데, 나도 그렇다(웃음)."
Q : 힘들었던 무명 시절 에피소드들이 회자되는데, 비슷한 시기를 관통하고 있는 청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20여년 전 캐스팅에 번번이 실패해 골방에서 빈 속에 소주를 들이키던 내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꿈이 있다면 조금만 더 버텨봐라. 그 꿈이 늙지 않도록 건강하게 지켜낼 수 있다면 언젠가 반드시 기회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버텨낸 내 자신이 대견하다. 나보다 더 고생하신 분들도 있는데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싶지만, 내 경험이 후배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정현목 문화선임기자 gojh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