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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도는 우습게 넘는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너무 더워 젖소도 우유가 안 나온다는 땡볕을 온몸으로 견디며 도로를 달리는 노동자가 있다. 배달 라이더다. 지난 17일 ‘폭염 휴식권’이 의무화됐지만, 법적으로 ‘근로자’가 아닌 이들에게 폭염 휴식권은 다른 나라 얘기나 다름없다. ‘언제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란 배달 플랫폼의 구인 홍보 문구는 폭염 앞에서도 유효할까? 일일 배달 라이더가 돼 확인해보기로 했다.
배달 남양주별내지구전망 시작 1시간 만에 체온 38.1도까지
가장 먼저 할 일은 오토바이를 빌리는 것이었다. 지난 26일 일주일 단기 렌트도 가능하다는 한 오토바이 정비소를 찾았다. 배달 오토바이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혼다 피시엑스(PCX)’가 정비를 마친 채 기다리고 있었다. 정비소 사장은 영 못 미더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처음 타는 친구들은 80% 천안함직업군인 이상 사고가 나요. 안 다치게 조심해요.”
다음날인 지난 27일 본격적인 배달을 위해 마포구로 향했다. 오토바이로 실제 도로 주행을 하는 게 처음이다 보니 길이라도 익숙한 곳에서 배달을 해야겠다 싶었다. 오전부터 볕은 따가움을 넘어 매서웠다. 무더위에 대비해 만반의 대비를 하고 나온 터였다. 목에 거는 얼음찜질팩과 아이스아메리카노, 얼린 납부유예 이온음료 1병…. 넘어질 경우를 대비해 옷은 긴팔, 긴바지를 선택했다.
오전 9시59분 합정역에 도착했다. 잠시 길 한편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떨리는 마음으로 배민커넥트 앱에서 운행 시작 버튼을 눌렀다. 이내 ‘띵동’ 소리가 울렸다. 첫 콜이 배정된 것이다. 상수역 인근 한 브런치카페에서 팬케이크와 카페라떼를 픽업해 공덕동 만리재의 한 오 예금금리비교사이트 피스텔에 배달하는 일이다.
배달료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9830원!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수락 버튼을 눌렀다. 5분 거리 가게에 들러 음식을 픽업하고 배달지를 향해 달렸다. 차로는 수없이 오간 거리였지만 오토바이로 달리니 긴장도가 확연히 달랐다. 안전벨트도 안 매고 맨몸으로 도로 위를 달리자니 맹수들 사이 사슴이 된 것만 같았다. ‘제 신용대출 서류 발 사고만 나지 않게 해주세요.’ 마음속으로 이런저런 신에게 기도했다. 일요일이라 평소보다 도로 위 차가 적었던 덕일까? 24분 만에 첫 배달을 무사히 완수했다. 그사이 목에 걸고 있던 얼음찜질팩은 벌써 흐물흐물, 뜨끈해진 상태였다. 한모금 마신 커피는 얼음이 녹아 밍밍했다. 이동 시간을 포함하면 도로 위에서 약 50분이 지난 때였다.
다음 콜을 기다렸다. 다시 합정, 홍대, 상수, 신촌 인근으로 돌아가는 경로에 수행할 수 있는 배달을 고르고 싶었다. 마음 같지 않았다. 배정되는 콜은 용산, 서울역, 충정로 방면이었다. 낯선 길에서 오토바이를 몰 자신이 없어 콜을 잡지 않고 신촌 쪽으로 돌아왔다. 콜 대기하며 헬멧을 벗고, 챙겨 온 휴대용 체온계를 귀에 꽂았다. 38.1도. 출발 전 측정한 체온보다 1.4도 높았다. 다음 콜이 잡혔다. 신촌 한 카페에서 마포구 염리동의 한 빌라로 김치참치주먹밥과 바닐라라떼를 배달하는 일이었다. 배달료는 3980원. 헬멧을 다시 뒤집어쓰자 머리는 ‘열돔’에 갇힌 듯했다. 16분을 달려 배달을 완수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고가 날지 모른다는 긴장감에 더운 줄도 몰랐다. 더위보다 옆을 지나는 차가 더 무서웠다.
주말엔 문 닫는 쉼터…해 피하려 조각 그늘 찾아
긴장감에 잊을 만한 더위가 아니라는 사실은 금세 분명해졌다. 다음 콜은 주문 3건을 묶어 배달하는 건이었다. 2호선 아현역 근처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픽업하고, 이대 근처 도시락집과 치킨집을 들러 연희동과 연남동에 뿌리는 경로였다. 총배달료는 1만3900원. 하필 첫 픽업 음식이 짜장면이었다. 면이 불을까 마음이 급해졌다. 설상가상 조리가 완료됐다던 가게에 도착해보니 포장이 안 된 상태였다. 5분을 허비했다. 초조감은 더했다. 이대 쪽으로 돌아야 하는데, 카카오맵은 ‘q턴’을 안내했다.
신호 대기는 고통이었다. 아스팔트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열 기운이 느껴졌다. 옆에 선 버스는 거대한 실외기처럼 뜨거운 공기를 뿜었다. 횡단보도에 초록불이 켜지는 순간 내비게이션 안내를 무시하고 중앙선을 돌아 유턴했다. 좀 전까진 무서워서 더운 줄도 모르겠더니, 얼마 안 있어 더워서 무서운 줄도 모르겠는 상태가 됐다. 목덜미를 태울 듯이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에 지나가는 차는 더 이상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가로수가 드리운 그늘은 도로 위의 축복이었다. 열풍이나마 바람을 맞으며 달릴 땐 그나마 낫다.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도 배달을 모두 끝내는 데 40분이 넘게 걸렸다. 짜장면을 받아 든 젊은 남자의 얼굴은 불만으로 가득했다.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웠다. 배달을 시작한 지 2시간이 좀 지난 때였다. 합정에 있다는 서울시 이동노동자 쉼터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식당가가 몰려 있는 역 주변에 있어 위치는 나쁘지 않았다. 이런, 문이 닫혀 있다. 평일에만 운영하고 주말엔 문을 닫는 모양이었다. 쉼터 앞 계단에 앉아 숨을 골랐다. 집에서 얼려 온 이온음료는 반 이상 녹아 있었다. 한입에 털어 넣었다.
에어컨을 쐐야겠다 싶어 결국 1층 카페로 갔다. 음료 1잔에 3천원. 배달 1건에 맞먹는 금액이다. 잠시 망설였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쫓기듯 카페로 들어갔다. 그제서야 길 위에서 마주쳤던 배달 라이더들 모습이 떠올랐다. 가로수 밑 그늘에서 잠시 목을 축이던 이, 사람 없는 횡단보도 앞 차양에서 잠시 해를 피했다가 신호를 받아 출발하던 이도 있었다. 도로가 일터인 라이더들에게는 그늘이 곧 쉼터였다.
돈 생각하면 못 쉰다
정산을 해봤다. 지금껏 번 돈은 2만7710원. 하루 오토바이 대여료가 3만원, 지금 마시고 있는 아이스티가 3천원…. 아직 본전도 못 찾은 셈이었다. 몸이 회복할 때까지 40분 정도를 쉬고 길을 나섰다. 길 한편에 세워둔 오토바이에 앉았다가 엉덩이를 델 뻔했다. 시트는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부릉~. 시동을 걸었다. 상수역 인근 떡볶이집과 홍대 앞 타코집에서 음식을 받아 대흥역 근처 오피스텔과 마포역 인근 호텔에 배달했다.
신호 대기하던 라이더들을 붙잡고 물었다. “오늘 같은 날, 어디서 쉬어요?” 홍대에서 만난 라이더는 “근처 살아서 집에 가서 쉬고 온다”고 했고, 마포역 부근에서 마주친 라이더는 “바빠서 못 쉬지만, 쉴 기회가 있으면 카페에 간다”고 했다. 대흥동 한 편의점 앞 간이의자에서 끼니를 때우던 쿠팡이츠 라이더 김성진(49)씨의 답은 이랬다. “카페는 땀 냄새 탓에 눈치 보여 안 가요. 은행에 잠깐 들어가거나 편의점에서 물 1병 사며 에어컨 바람을 쐬죠.” 스마트폰 날씨 앱을 보니 기온은 38.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신수동 한 업장에서 ‘갱상도 냉국수’를 북아현동 한 대단지 아파트에 배달하는 콜이 마지막이었다. 마감하기엔 이른 시각인 오후 4시였지만 더 하는 건 무리다 싶었다. 휴식 시간 1시간20분을 포함해 총 운행 시간은 6시간. 모두 10건을 배달했다. 수입은 5만4480원. 세금·보험료를 제하면 5만1956원이다. 오토바이를 빌리고, 기름을 넣고, 이온음료를 사 먹는 데 쓴 돈은 5만313원. 남는 돈은 없었다. 전날 오토바이를 빌리러 찾아간 정비소 사장이 예견한 대로였다. 그는 “12시간 이상은 타야 수지 타산이 맞을 것”이라고 했다. 상당수 라이더들이 초기 투자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장기 리스하거나 대출을 받아 오토바이를 마련하기 때문에 하루에 2만원 남짓은 이런 고정비로 빠진다는 설명이었다.
배민커넥트 앱이 배정해주는 대로 콜을 연속으로 수락했다면 좀 더 벌이가 나았을 수 있다. 여러 매장에서 음식을 픽업해 순차 배달하는 묶음배달을 더 했더라도 수입을 더 올렸을 것이다. 결국 도로 위에 있는 시간을 더 늘렸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를 때쯤 배민커넥트 카카오톡 채널에서 알림이 울렸다. “무더위가 극심한 요즘 아래 세가지는 꼭 챙겨 배달하기로 약속해요. ①자외선 차단제 바르고 토시 착용하기 ②지속적으로 수분 보충하기 ③틈틈이 그늘 및 시원한 공간에서 휴식 취하기. 라이더님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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