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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스승과 제자 사이의 거리 약 1~1.5ｍ. 두 대의 피아노는 건반을 마주한 채 무대에 섰다. 피아노 앞에 앉은 두 사람의 시선엔 늘 서로가 있었다. 스승의 시선은 내내 제자를 향했고, 제자는 스승과 눈을 맞추며 무언의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 사이로 8년, 2920일, 7만 80시간의 음악이 흘렀다. 두 개의 우주가 만나는 순간이었다.
한국 클래식계에서 가장 화제인 ‘사제 듀오’가 왔다. 미국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2022년)을 한 이후 국내 음악계의 변곡점이 된 피아니스트 임윤찬(21)과 그를 길러낸 스승 손민수(49). 지천기증권연구소
난 1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30 손민수 & 임윤찬’ 리사이틀에선 ‘클알못’(클래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신조어)도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의 줄임말)에 뛰어들게 만든 사제 듀오의 위상이 증명됐다.
이날의 연주는 스승과 제자가 공유한 긴 시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견고하게 쌓아 올린 시간의 역사연예인주식종목
는 무엇도 침범하거나 허물 수 없었다. 스승과 제자는 닮은 듯하지만, 완전히 달랐다. 스승이 물이라면, 제자는 불이었다. 정제된 음악 안에서 고요히 사색하는 음악이 손민수라면, 정교하게 다듬어진 세계에 끊임없이 균열을 만들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음악이 임윤찬이었다.
일찌감치 매진 사례를 기록한 이날 공연은 일반적인 듀오 리사이틀과는 다집에서주식투자
른 피아노 배치로 음악을 시작했다. 대개의 공연에선 피아노의 덮개 부분을 이어 붙여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얼굴을 마주한 채 연주하나, 사제 듀오는 아주 가까이에 나란히 앉았다. 그러자 듀오는 서로의 음악 이야기를 아주 가까이에서 들었고, 관객은 스승과 제자가 마주하는 시선을 따라가게 됐다.
공연의 시작은 브람스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야마토게임장
소나타’였다. 내성적인 완벽주의자 브람스는 애초 이 곡을 피아노와 현악기 4대를 위한 오중주로 썼으나, 이후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로 다시 만들었다. 현대에 와선 오중주가 더 많이 연주되나, 피아노로만 연주하는 곡에선 두 사람의 서사를 밀도 있게 채울 수 있었다. 피아노로 이 곡을 가장 처음 연주한 클라라 슈만과 그를 연모한 브람스의 이야기가 켜켜이오리지널 바다이야기
쌓였듯, 두 사람의 연주 안엔 이들의 시간이 음표로 채워졌다.
피아니스트 손민수 임윤찬의 듀오 리사이틀 [목프로덕션 제공]
퍼스트(제1피아노)는 손민수였다. 그는 탄탄하게 골조를 쌓으며 음악의 중심부를 다졌고, 중후한 화사함으로 곡의 질감을 만들었다. 임윤찬은 스승을 가만히 바라보며 풍부한 저음을 연주했다. 밀도 높은 손민수의 타건에 파장을 일으키듯 번져가는 임윤찬의 터치가 더해지자 두 대의 피아노는 오중주처럼 풍성해졌다. 1악장에 이어 따뜻하고 포근한 대화의 2악장에선 악보 안에 박제된 음표들이 생생히 살아움직였다.
음악은 장편소설처럼 감정의 서사를 쌓아갔다. 스승이 리드하는 스케르초로 시작한 3악장에선 사제 듀오의 격렬과 격정이 파고들었다. 그럼에도 흐트러짐 없는 스승은 ‘TJ’(이성형, 계획형)의 화신인 듯 견고한 음악 세계를 직조했다. 4악장에 이르면 스승과 제자는 마침내 클라이맥스를 향해 복잡다단한 템포와 화성을 주고받으며 사제간을 넘어 서로를 신뢰하고 존경하는 동료이자 동반자로 음악을 마무리했다.
임윤찬은 스승 손민수와의 공연에 대해 그저 “함께 노래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번 리사이틀에서 고른 프로그램은 각기 다른 ‘운명’이자 ‘인연’이 된 곡들이었다. 저마다의 이유로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고 임윤찬은 말한다. 예원학교 시절 스승 손민수와 함께 처음 들었던 라흐마니노프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교향적 춤곡’도 그렇다. 그는 라흐마니노프를 자신의 ‘심장’이라고 했다.
2부에선 제자가 퍼스트로 음악을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스승과 제자의 전혀 다른 숨결을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단정하게 정돈된 스승의 피아노 위에서 제자는 자신의 우주를 펼쳐내기 시작했다. 깊고 검은 우주 위로 찬란하게 부서지는 별들을 흩뿌리며 그는 날아 올랐다. 스승은 제자가 마음껏 날개를 펼 수 있도록 길을 내줬다. 그때마다 손민수의 시선은 정지된 듯 임윤찬에게로 멈췄다. 두 사람은 종종 재즈 피아니스트처럼 리듬을 탔고, 사제 듀오의 상체엔 그루브가 실렸다. 두 대의 피아노만으로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을 만들며 건반 위를 내달리는 네 개의 손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피아니스트 손민수 임윤찬의 듀오 리사이틀 [목프로덕션 제공]
임윤찬이 ‘신이 선택한 음악가’라고 극찬한, 절친이자 동생 작곡가 이하느리가 편곡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장미의 기사’ 모음곡’은 이날의 대미를 장식했다. 손민수의 스승인 러셀 셔먼이 그에게 강력히 권한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한 오페라를 통해 사제 듀오는 이 곡을 오래전 함께 들었다. 임윤찬은 이 곡에 그는 “한 번 스치면 절대 잊히지 않는 눈빛, 한 번 맡으면 잊히지 않아 기억 속에서 계속 불러오게 되는 향수와도 닮았다”고 했다. 그에겐 “첫사랑에 빠지듯 빠져버린 음악”이라고 한다. 애초 관현악 버전의 곡이지만, 임윤찬의 아이디어로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버전이 세상에 나오게 됐다.
밀도 높은 서사를 풍성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옮긴 ‘장미의 기사’ 편곡 버전은 두 위대한 피아니스트에게 헌정하듯 복잡한 화성과 리듬, 패시지가 채워진 변화무쌍한 음악이었다. 이 곡에선 스물한 살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찬란한 젊음이 쉴 새 없이 용솟음쳤다. 모음곡 중 왈츠의 변덕스러운 얼굴에 집중한 편곡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불꽃놀이처럼 수많은 음표를 쏟아냈다. 피아니시시모와 포르티시시모를 오가는 다이내믹은 음악을 극적으로 이끌었고, 두 피아니스트의 눈부신 호흡을 끌어냈다.
스승이 오선지라면 제자는 음표였고, 스승이 악보라면 제자는 음악이었다. 손민수라는 드넓은 초목을 달리는 야생마처럼 임윤찬은 거침없이 내달렸다. 그는 손민수라는 깊은 바다를 유영하는 미지의 생명체가 돼 더 멀리 더 빠르게 물살을 갈랐다. 제자는 스승의 ‘영혼 그 자체’에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손민수의 영혼을 품고 성장한 임윤찬의 우주는 끝을 모르고 팽창 중이었다.
앙코르 동안 객석은 통제 불능이었다. 관객은 금기를 깼다. 마지막 명장면을 영상으로 담기에 바빴고, 급기야 휴대폰도 울렸다. 그럼에도 소음은 사제 듀오의 음악을 침범하진 못했다. 잠깐의 휴지조차 연극의 한 장면처럼 관객과 ‘밀당’(밀고 당기기)을 했다. 앙코르는 ‘장미의 기사 모음곡’ 중 발췌한 ‘퀵 왈츠(Quick Waltz)’. 두 우주가 서로를 밀어붙여 만들어낸 초신성이 관객 앞에 펼쳐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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