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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양구의 ‘SF 사고실험실’ 2025년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상상해 보자. 인도 북부에 2주간 열파가 덮쳤다. 지독한 더위와 함께 습도까지 치솟았다. 여기저기 말 그대로 더워 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인도의 낡은 발전·송전·배전 설비마저 열파에 망가지자 더위는 계층을 초월한 문제가 됐다. 살아남은 사람은 더위를 피하고자 일단 인근의 호수나 하천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한낮의 열기에 데워진 호수와 하천의 수온도 체온보다 높았다. 밤에도 수온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호수에서 살짝 잠에 들었던 사람은 아침에 어김없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호흡기를 공격하는 미세 먼지와 식수로 사용하기 힘들 정도로 오염된 물도 한몫했다. 그렇게 2주간 인도에서만 2000만 명이 사망했다. 1952년생으로 때때로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SF 작가”로도 꼽히는 미국 작가 킴 스탠리 로빈슨이 2020년에 펴낸 『미래부(The Ministry for the Future)』는 이렇게 소설을 시작한다. 이미 현실에서는 과거가 된 2025년이지만, 소설에서는 지구 기후가 인류에게 “원금 상환”을 독촉하기 시작한 원년이다. 인도의 열파로 사망한 2000만 명이 그 시작이었다. 과학논문·보고서 빼곡…논픽션 같은 소설 로빈슨이 2020년에 펴낸 SF소설 『미래부』. [중앙포토] 이 시。에 스위스 취리히에는 가상의 국제기구가 구성된 상태다. 2015년에 채택된 파리 협정을 근거로 지지부진한 인류의 기후 위기 대응에 돌파구를 마련하길 기대하면서 만들어진 기구다. 기후 위기로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미래 세대를 대변하는 정체성을 내세웠기에 언론은 이 국제기구를 ‘미래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소설은 미래부를 중심으로 2025년부터 2053년쯤까지 약 30년간 인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추적한다. 그 중심에는 인도의 열파에서 가까스로 생존한 구호 단체 출신의 ‘프랭크’와 아일랜드 출신 여성 외교관으로 미래부의 수장을 맡은 ‘메리’가 있다. 하지만 이 둘의 이야기는 소설의 기본 뼈대일 뿐이다. 이 소설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열파에 2000만 명의 가족과 이웃을 잃은 이들의 증오는 어디로 향할까. 인도에서 시작한 분노는 전 세계 곳곳으로 퍼지면서, ‘죽음’과 ‘파괴’를 상징하는 힌두교 신의 이름을 딴 테러 집단 ‘칼리의 아이들’이 탄생한다 소셜그래프게임주소 . 2001년 9·11 테러 같은 일을 겪은 인류의 경험을 염두에 두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들은 우선 기후 위기에 명백한 책임이 있는 석유 기업의 임원과 주요 투자자를 공격한다. 석유에서 얻은 부로 흥청망청 살아가는 아라비아반도의 왕족도 예외가 아니다. 노골적인 암살과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사고로 하나둘씩 목숨을 잃자,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은신처에 숨어서 떠는 일이다. 그 결과, 석유 산업에서 뭉칫돈이 빠져나간다. 온실 기체를 내뿜으며 전 세계를 누비는 항공기도 드론 테러의 대상이 된다. 1차 타깃은 부유층의 전용기. 2차 타깃은 뉴욕·런던·싱가포르·홍콩 같은 기업인의 출장이 잦은 노선이다. 비행기 테러로 공포에 휩싸인 대중은 항공 여행을 피한다. 결국 항공 산업은 전기 비행기나 비행선 같은 무탄소 대안을 궁리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질 낮은 중질유를 태우면서 바다를 누비는 유조선·화물선을 타깃으로 한 드론 어뢰의 무차별 테러가 항구 근처에서 이어진다. 해상 무역이 타격을 입으면서 세계 경제는 2008년 금융 위기보다 더 큰 충격을 받는다. 자산 시장이 폭락하고 실물 경제가 휘청이면서 세계 곳곳에서 자산 불평등을 문제 삼고 사회 안전망을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커진다. 결정타는 ‘고기’였다. 소고기 수출국인 미국·브라질·오스트레일리아의 기업형 사육 시설에서 사육되는 소에게 ‘광우병’을 유발하는 변형 프라이온 단백질이 무차별 주입되었다는 괴담이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퍼진다. 사건의 실체와 무관하게 대중의 육류 소비가 급감한다.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았던 축산 기업이 흔들린다. 이 모든 ‘파괴’가 진행되는 동안 미래부는 ‘대안’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한다. 급선무는 당장 바다로 질주하는 남극과 그린란드의 빙하를 붙잡아두는 일이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다. 윤활유 역할을 하면서 빙하를 바다로 밀어내는 하단의 융해수를 지상으로 퍼 올려서 남극과 북극의 추위로 다시 얼음으로 만들면 어떨까. 만약 이 시도가 성공한다면 빙하는 다시 지면과 밀착해 바다로 밀려나는 속도가 떨어지고 인류는 그만큼 시간을 벌 수 있다 체리마스터 다운 . 빙하에 2㎞ 정도의 구멍을 뚫고 물을 퍼내는 이 무식한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돈은 빙하 한 기당 약 100억 달러(약 14조원). 남극과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아서 21세기 안에 지구 해수면이 1m에서 수m 이상 오르는 일보다는 낫다. 무차별 테러와 투자 이탈로 도산 위기에 빠진 석유 기업은 이 프로젝트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잡았다. 석유·천연가스 시추에 쓰였던 장비를 활용해 남극과 그린란드에서 얼음을 뚫고 물을 퍼내고 내부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석유 기업이 어쩔 수 없이 인류를 보호하는 역할로 변신한 것이다. 1991년 피나투보 화산 폭발 모습. [중앙포토] 위험천만한 시도도 있다. 자국민 2000만 명을 열파로 잃은 인도는 파키스탄·중국 등 이웃 나라를 포함한 국제 사회의 반발에도 1991년 피나투보 화산 폭발에서 나온 것과 비슷한 양의 화산재 성분(이산화황)을 인도 대기에 살포했다. 1991년 화산 폭발 때 나온 화산재가 햇빛을 가리면서 당시 지구 기온은 0.6도 낮아졌고, 1~2년 정도 효과가 지속되었다. 전 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지면서 미래부는 주요 국가의 중앙은행과 재정 당국을 설득한다.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 에너지와 전기 저장 장치, 온실 기체를 내뿜지 않는 무탄소 화물선과 비행기 보급, 남극과 그린란드의 얼음을 잡아두는 일 등에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는 새로운 양적 완화를 시작하자고. 탄소를 줄이는 데에 돈을 쓰면 돈을 버는 구조를 만들자고. 사실, 이 소설은 허구지만 ‘논픽션’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2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열파, 즉 온도와 습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서 사람이 체온을 조절할 수 없는 상태마저도 과학자의 진지한 과학 논문에 근거하고 있다. 실제로 온도와 습도가 높아서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상태(습구온도계(공기가 통과하는 물에 적신 천으로 덮힌 온도계)로 35도 이상)의 인도 북부 같은 지역이 .. 늘어나고 있다. 앞에서 열거한 수많은 일화도 (테러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접고 나면) 그동안 기후 위기를 놓고서 나온 수많은 대응과 대안의 총집합이다. 킴 스탠리 로빈슨은 21세기 들어서 기후 위기를 놓고서 쌓인 수많은 과학 논문, 정책 보고서, 분노에 찬 고발과 폭로, 마음을 흔드는 시·소설·에세이 등을 모아서 한 편의 모자이크 같은 작품을 만들었다 오리지날야마토 . 프랭크와 메리의 이야기 사이에 정책 보고서, 과학자의 일기, 비밀회의 메모가 삽입되는가 하면, 탄소와 시장(市場)과 지구가 화자가 되어 자기 목소리를 낸다. 인간 서사와 비인간 서사가 나란히 놓이는 이 형식 자체가 로빈슨이 던지는 질문이다. ‘기후 위기는 인간만의 이야기인가.’ 지금 기후 위기에 관해 딱 한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면, 감히 말하건대 『미래부』 한 권으로 충분하다. 소설 속에서 인류는 약 30년에 걸쳐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한다. 2053년쯤이 되면 대기 중의 온실 기체 농도가 유의미하게 낮아진다. 책이 나오자마자 우리 시대의 낙관론자라고 할 수 있는 버락 오바마, 빌 게이츠 같은 유명인이 “인류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며 극찬한 이유다. 오바마·게이츠 “희망” 극찬에도 현실 요원 하지만 그들은 애써 그 희망에 ‘혹독한 대가’가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는다. 그 희망은 수많은 사람이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가능하다. 결정적으로, 1980년대부터 21세기 초반까지 미국이 앞장서고 세계가 뒤따르며 표준으로 굳혀온 시장 중심 자본주의와 그것에 밀착된 사회 불평등과 라이프스타일의 구조 개혁 없이는 불가능하다. 과연 오바마나 게이츠가 한 경제 공동체 내에서 부자의 연간 소득 상한선을 최저임금의 열 배 이하로 제한하는 방식의 개혁에 동의할까. 로빈슨은 『미래부』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 때야 비로소 우리가 기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미래부』를 읽고 나서도 희망이 쉽사리 보이지 않는 결정적 이유다. ◆뒷얘기=킴 스탠리 로빈슨은 그 명성에 비해 국내에 제대로 소개된 작품이 거의 없다. 14세기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대부분이 사망하고 나서, 서유럽이 사라진 세계사를 다시 쓴 걸작 『쌀과 소금의 시대』(2002)가 번역됐으나 서。에서 구하기 어렵다. 그가 1990년대 인류가 화성에 정착하는 과정을 연작으로 펴낸 ‘화성 3부작’도 첫 책의 일부만 소개되다 말았다. 강양구 과학 전문 기자이자 지식 큐레이터. 연세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23년 넘게 기자로 일하면서 과학기술·보건의료·환경 분야를 취재했다. SF를 거울 삼아 정치·사회·경제·문화를 가로지르는 다양한 문제를 들여다본다. 『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 『과학의 품격』 등을 지었다. 야마토게임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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